케케묵은 유학이나 별 볼 일 없는 옛 기술들과 달리, 과학 기술은 모두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도로가 정비되자 운송이 편해졌고, 외딴 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또한 쉽게 무역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본래 누군가가 병에 걸리면 아무런 근거 없는 민간요법을 들이미는 돌팔이들로 가득했던 과거와 달리, 기술원 의학부에 파견된 전문의들은 명확한 유사 병례를 들어 적절한 치료법과, 예상되는 위험을 알려주곤 했다. 오래 써왔다는 이유만으로 외워야 했던 수 백 개의 문자를 간단한 표음 문자 체계로 치환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혁명에 가까웠다.
'과학'이라는 두 글자는 어린 유혜에게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우수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 어떤 실험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답은 하나일 수 밖에 없었다.
각지에 세워진 기술원에서 모아온 '우수한 아이들'만으로 이루어진 실험은, 적어도 안내받은 내용만 놓고 보면, 무척 간단한 구성이었다.
- 모인 24명의 아이들은 함께 합숙하며 특수한 교육을 받아, 연구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 24명 중 가장 뛰어난 1명을 선별하여, 차기 프사이(Ψ)로 한다.
- 나머지 23명은 그 1명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능력을 인정받아 과학회의 심장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출세할 수 있는 구성. 낙후된 영록의 땅에서 썩어가는 것과는 당연히 비교도 안 되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유혜에게 축복일 뿐이었지만, 동시에 시련이기도 했다. 위에 서는 1명이냐, 뒤따를 뿐인 19명이냐 하면 당연히 전자가 되고 싶었고, 자신에게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었기에.
"안녕?"
그러니 ──와의 만남은 유혜에게 있어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사고가 빨랐고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를 특출나게 만드는 것은 다름이 아닌 그의 유연한 생각들이었다. 문제가 주어지면 그것을 주어진 공식에 대입해서 풀지 않고, 다른 가능성이 있는지부터 모색하곤 했다. 어디까지나 '우등생'에 가까운 유혜에겐 없는 능력이었다.
실험은 한 번에 선별을 마치는 식이 아니라, 단계별로 한 명씩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달 받기로는, 과학회의 일원으로서 배워야하는 것과 그 보좌로서 배워야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보좌역에 더욱 어울리는 자들은 일찌감치 다른 교육 커리큘럼을 듣는 것이 낫다는 이유였다. 매 달 한 명씩 인원이 줄어갈수록 유혜는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음은 자신일지도 몰라. 설령 최후의 2인까지 남았다 치더라도, ──를 이길 수 있을까?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투박한 말로, 유혜는 당시 '죽도록 노력했다'.
커리큘럼에 있는 내용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외우기 위해, 수많은 뇌과학 논문을 읽고, 외우고, 분석하고, 또 개선하기 위한 수많은 안을 내려 했다. 조금씩이나마 학계에 기여할만한 연구 성과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한 발짝 앞에, 아니, 어쩌면 한참 앞에 서있는 제 경쟁상대를 보고 있자니, 초조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너는 프사이가 되고 싶어?"
그러니 그 아이가, 다소 슬픈 눈빛으로 던진 그 질문은 유혜에게 도발 이상의 의미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이 날의 대답을 오래토록 후회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답을 하고 만다.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될 거야. 네가 아니라, 내가."